그 해는 유달리 특별했다. 류가미네의 왕녀를 해원국의 후궁으로 들여보내고 그 공녀가 죽은 이후로는 특별히 엄청난 양의 공물을 보내오지 않던 채진국이 전례없는 화려한 규모로 사절단을 보내오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렇게 된 이상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해원의 지배자라할지라도 예우를 갖춰줄 필요가 있었다. 이러니저러니하더라도 채진국은 황제의 첩의 모국이다. 사실상 약소국이라하더라도 후궁에게 난 자식은 대우를 해줘야 함이 옳았다. 덕택에 류가미네 미카도는 열일곱해를 살아오며 난생 처음으로 국가적 연회의 참석이 결정되었다.
"정말이야?"
"뭐가?"
"왜 시침떼고 이러시나, 저하! 당연히 우리 미카도왕자님의 기념비적인 공식연회 첫 참석에 대한 이야기말이야!"
키다 마사오미의 흥분된 대꾸에 미카도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월궁으로 연통이 들어온지 이제 고작 사흘남짓인데 어떻게 벌써 그가 알고있단말인가?
"어떻게 알았어?"
"우리 집안이 좀 굉장하잖아? 비록 무관이지만. 그래도 무관은 연회가 열릴 때 그 호위에 대해 관여하기때문인지 정보가 빨리 전해지더라고. 돌아가신 후궁마마의 모국인 채진국에서 대대적인 사신단행렬이 예정되었다던데. 조금만 지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이야~ 월연궁의 시비들의 분위기 좀 봐라. 아주 내가 흥이 절로난다."
미카도의 뺨이 붉어졌다.
미카도의 첫 공식연회 참석 결정으로 언제나 적적할만치 평화롭고 고요하던 월연궁은 드물게 활기를 띄고 있었다. 지금까지 미카도는 특별히 권력, 왕위에 대해 관심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에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지만 아랫것들이 이렇게까지 기뻐해주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성장이 더디어 새로 옷을 맞출 필요도 없고, 사치를 저어하는 미카도인지라 월연궁에 사치품이 반입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기에 장 속에는 그럴싸한 옷 몇벌도 없었다. 그나마 있는 옷 몇 벌도 삭고 색이 바란탓에 바로 내일부터 의상을 제작하기 위한 직공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 복작복작하고 부산스러운 분위기를, 감 좋은 키다 마사오미가 모를리 없었겠지. 자신의 이 들뜬 마음도 들켰을지도 모른다. 왠지 부끄러워져 미카도는 고개를 돌렸다.
"아하하... 알면서 왜 물어보는거야, 정말."
"그 사실을 너의 입으로 말하게 만들고 싶어서! 그래서 부끄러워하는 왕자님의 얼굴을 영접하고 싶었나이다!"
아무리 얌전하고 고아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하더라도 열일곱이다. 그럴싸한 사회적 관계도 맺어본 적 없이 온실 속 화초처럼 비바람 한번 맞지않은 아가씨나 다름없었다. 가장 아름다운 것만 보고 가장 귀한것만 입으며 부드럽고 달콤한 것만 입에 담았다. 열일곱해를 이 궁에 갇혀지냈다. 어찌 바깥세상이 궁금하지 않을까? 그 미카도의 기뻐하는 얼굴이 보고싶어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그런 키다 마사오미의 마음이야 갸륵하지만, 특유의 화법 덕분에 정작 미카도에겐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부끄러움에 미카도가 심호흡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짜...진짜 부끄럽다. 그만해라."
"기쁘지요? 기쁜거겠죠? 왕자님?"
미카도의 그 초인적인 인내심을 이해못한 마사오미는 좋다고 미카도에게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고 신나서 종알거리고 있다. 싱글벙글한 그 얼굴이 솔직히,
"...명령이야, 그거 더 말하지마. 더 말하면 쫒아낼거야."
얄밉다.
"어어?!"
"시끄럽고, 명을 받드세요."
미카도는 결국 못 참고 엄하게 답했다.
어쨌거나 미카도는 하늘같은 폐하의 핏줄을 이은 아들로 아직 관직하나 없는 키다 마사오미는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했다. 화내면 무섭다니까 정말...
평소에 마사오미와 함께 차를 즐기는 정원, 탁자에 정갈한 다과 두 접시와 따뜻한 차를 내어오던 시비는 그런 둘의 공방전이 귀여웠던지 살그머니 웃음을 머금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귀하신 분을 모시는 이의 태도로는 불합격이지만 마사오미도 미카도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뒷걸음질쳐 물러난다.
미카도가 접할만한 사람들은 마사오미나 호위기사, 시비, 가끔 연통을 들고 찾아오는 이들, 학자등이 고작. 어마마마와 함께 해원국으로 따라오고, 그녀의 사후에는 아들인 미카도를 돌보고 받들며 살아온 그네들이므로 미카도도 그들에게 친근감을 지니고 있었다. 여간한 공주나 옹주들도 미카도처럼 감금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진 않았다. 갇혀사는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해 패악을 부리거나 삶의 의욕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입장이지만 미카도는 곧고 바르게 자라났다. 이렇게 좁은 세계에서 십여년을 서로 기대며 살아왔으니 친근한 것도 당연한 것 같다. 약간의 정적 후에 마사오미가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저하께서는 언제 장신구와 옷차림을 맞추시나요?"
"음... 앞으로 한달남짓에 걸쳐서 만든다고 하더라고. 아마 연회 이틀전쯤엔 마무리 되겠지"
"그럼 그 때 찾아와도 좋을까요?"
"...응?"
"골라주고 싶어서 그래. 첫 공식연회 참석인데 내가 봐 주고싶어. 괜찮을까?"
마사오미의 말을 미카도가 가만히 곱씹었다.
솔직히 옷을 맞추고 고르는 것을 보이는 것은 부끄러웠다. 옷을 입는 시종이나 배우자 외에 왕의 핏줄은 자신의 속살을 내비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평소라면 그냥 쳐들어 올 것을 굳이 마사오미가 확인을 받기 위해 묻는건 그 탓이리라. 솔직히 말하면 약간은 무례한 청이기까지했다. 하나뿐인 친구라지만 속살을 보이는게 부끄럽다. 게다가 시비나 할 일을 직접 하겠다고 나서다니, 명예높은 무관의 아들인 그를 부려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소라면 거절하겠지만...
"...그럼, 내가 적당한 시간에 미리 연락을 넣도록 할게."
미카도가 작게 대꾸했다.
출처
원문링크 : [보색샌드] 비단창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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