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죽음
글/이현수
아무도 모를 것이다.
바닥에서 피가 흐른다. 누워있는 남자의 눈은 벌려져 있다. 그는 홍대에서 약간의 돈을 받으면서 연명하는 서른 다섯 살의 밴드 기타리스트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한 달에 네 번 합주에 참가한다. 밴드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편의점이나 과외 알바 등을 하지만 갑자기 남자가 나가지 않더라도 신경 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방에서 올라와 생활한 지 오 년 째. 가족과는 절연 상태라는 얘기를 들었었다.
"아버지가 원래 어렸을 때부터 많이 때렸어…."
그는 어제 청소를 안 했어, 라는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야구 방망이로도 때리고 공사장에서 방망이를 주워다가 때리기도 하고. 보통 이런 스토리에는 아버지는 술꾼이었고 제정신일 때는 그렇지 않았다 라는 설명이 붙지. 그렇지 않았어 우리 아버지는. 제 정신이었어. 정신이상자도 아니었고 나중에 나한테 잘못을 빌지도 않았어. 그는 그런 사람이었지. 아이와 여자는 때려야 된다는 사상의 소유자였어. 그래서 어머니와 난 도망쳤지. 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셨어. 그 인간이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와 보지도 않았어. 몇 년이 지난 뒤에 내가 혼자 살던 마산의 자취방에 오렌지 주스 한 통을 놓고 갔었지. 그게 끝이었어. 아버지가 찾아왔을 때 난 증오스럽기도 했지만 무서움이 더 컸어. 이젠 아버지보다 내가 덩치가 더 큰데도. 이상하지. 우스운 일이야.
서준은 언제나 말투가 고분고분했다. 누군가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무서워하거나 혹은 엄청나게 화를 내기도 했다. 그랬기에 그의 머리를 프라이팬으로 내려칠 때도 지성은 생각했다. 이 녀석은, 어쩌면 반항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삶을 끝낸 다음에도 서준은 그저 말없이 주방 바닥에 누워있을 뿐이었다. 그에게 자기 주장은 없었다. 죽을 때 조차도.
지성은 죽은 남자를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주방에서 공들여 손을 씻었다. 어떤 미국드라마에서 보니 무슨 액체를 쓰거나 하면 피가 묻었던 바닥인지 어떤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죽음 자체가 가려질 가능성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남자에게는 여자친구도 가족도 매일 만날만큼 친한 친구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은 아마 늦게 밝혀질 것이다. 방 한구석에 있던 자신의 가방을 든 다음, 방안에 남아있을 지도 모를 지문자국을 없애기 위해 걸레로 구석구석을 닦았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가 살아있던 시간은 정오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햇빛이 뉘엿뉘엿 지고 있다. 어두워지는 방안에서 그의 실루엣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를 관찰할 악취미는 없었다. 지성은 열쇠를 쥐고 바깥에서 문을 잠궜다. 이것으로 그의 죽음이 알려질 방법은 약간이나마 차단되었다.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그는 이제 언제쯤 세상에 죽음이 알려지게 될까. 서준의 죽음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지금은 지성밖에 없었다. 목숨을 빼앗는 최악의 가해적 행위를 한 인간만이,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서글픈 인간도 있다니. 지성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웃으면서, 진심으로 서준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휴대폰을 켰다. 자신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가 사라지면 걱정하고 연락을 해 줄. 휴대폰을 꺼 놓은 순간에도 그녀는 몇 통의 전화를 하며 걱정하는 내용의 카카오톡을 보내 놓은 상태였다. 답장을 해 줄 시간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린 후, 출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불어나는 인파에 묻혀 순식간에 평범으로 사라져갔다.
출처
원문링크 : [창작] 아무도 모르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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