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3일 화요일

이마트 피자, 그냥 드시나��?


거대한 피자가 온다.

지난 9월 초, 은평 이마트 지하 식품매장에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마트에서 피자를 팔기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마트 피자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람들이 몰리는 것일까. 이유는 대개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이마트 피자는 "싸고, 크고, 맛있기" 때문이다.

이마트 피자는 싸다. 게다가 크다. 값은 11,500원밖에 하지 않고 크기를 말하자면 지름이 40cm가 넘는다. 만약에 아직까지 이마트 피자를 본적이 없다면 당장 집에 있는 30cm 자를 꺼내서 거기에 약 15cm 정도를 더한 다음 한 바퀴 빙글 돌려 원을 만들어보라. 그게 바로 11,500원짜리 이마트 피자 한판 크기다. 누구라도 이정도 크기에 그만한 값이면 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이마트에서 피자를 사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이마트는 아침 10시에 문을 여는데 점심시간에 피자를 주문해도 보통 몇시간씩 기다렸다가 피자를 받아와야 한다. © 윤성근


▲ 각 업체 피자 크기 비교.이마트 피자는 그동안 크기로 소문난 코스트코 피자보다 아주 약간 작다. © 윤성근

이마트 피자는 맛있다. 혹은,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마트 피자 광고를 보면 피자 만드는 도구를 조선호텔 베이커리에서 제공받는다고 한다. 매장안쪽엔 피자 크기에 어울리는 커다란 화덕이 있고 거기 주방에서 깔끔하게 하얀 요리사 옷을 차려입은 몇 사람이 돌아가며 계속 피자를 구워내고 있다.

더 이상 길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마트 피자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피자를 사 먹는 사람들 입장에서 이것은 확실히 좋은 일이다. '도미노', '피자헛', '파파존스' 같은 브랜드 피자는 값이 비싸서 즐겨 먹기에는 부담이 있다. 그렇다고 동네 배달 피자집에서 싼값에 '원 플러스 원' 피자를 시켜 먹기엔 뭔가 거슬리는 마음이 있다. 요즘처럼 웰빙을 따지는 시대에 저렴한 동네 피자는 과연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마트 피자는 싼 가격에 엄청난 크기, 게다가 유명한 호텔에서 쓰는 재료를 그대로 쓴다는 게 아닌가!

싸고, 양 많고, 질 좋은 피자
이쯤 되면 누구나 짐작이 갈 만한 내용 몇 가지를 말하겠다.

첫째, 이마트 피자는 잘 팔린다. 하루에 600판만 한정으로 판다는 은평 이마트 피자는 당연히 영업시간이 끝나기 전에 한정 수량이 다 팔리고 피자를 사려면 우선 주문을 해놓고 몇 시간씩 기다렸다가 받아와야 할 정도다. 주말 같은 경우 점심시간을 전후해서 한정 수량 예약이 모두 마감되기도 하니, 은평 사람들은 피자만 먹고 사는 건가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둘째, 이마트 근방에서 피자를 팔아 가게를 운영하는 동네 상권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고 있다. 은평 이마트는 누구나 인정하다시피 은평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상권이다. 고만고만한 경제력을 갖고 사는 서민들이 많은 은평구에서 값싼 물건을 편리하게 살 수 있는 대형마트는 그 존재감이 하늘을 찌른다. 주말 같은 경우 은평 이마트에 가보면 크리스마스 전날 명동 한복판을 떠올릴 만큼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피자를 먹고 싶을 때 장보기를 마치고 집에 가서 다시 피자집에 전화를 걸지 않아도 된다. 이마트에서 싸고 양 많고 왠지 맛도 좋을 것처럼 보이는 피자를 다른 물건들과 함께 팔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마트 근처 피자 가게들은 매출이 20%정도 줄었다고 한다.(<시사IN>, "동네 피자 울리는 이마트 '서비스 피자'", 2010년11월16일) 지금은 이마트에서 치즈피자와 불고기, 컴비네이션 피자 이렇게 세 종류만 한 판 단위로 팔고 있기에 이 정도이지 앞으로 혹시라도 피자 종류를 늘이거나 '코스트코(costco)'처럼 조각피자까지 팔게 되면 동네 피자가게가 더욱 힘들어질 것은 빤한 일이다.

▲ 코스트코 피자는 싼 가격에 양 많기로 소문난 피자다.(사진은 코스트코 일산점) 하지만 이 피자를 사먹기 위해서는 일년에 삼 만 오천원 하는 회원권을 사야 한다. 코스트코에 들어가려면 회원권이 꼭 필요하다. 반면에 이마트는 누구나 들어와서 물건을 사는 곳이다. © 윤성근

피자와 신자유주의

이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이마트 피자 이야기는 이마트가 피자를 만들어 팔기도 전에 인터넷에서 이미 논쟁이 일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값싸고 양 많은 데다가 품질까지 좋은 것을 사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경제 논리로 풀어보면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우리 사는 사회를 서서히 곪게 만드는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 Neoliberalism)' 핵심 원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신자유주의 운동은 19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생겨난 현상이다. 쉽게 말해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하거나 아예 국가는 시장경제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국가는 간섭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일단 좋은 말 같다. 사람들이 국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누구든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만들어 팔아 운이 좋으면 부자가 될 수 있고 부자가 된 다음에도 돈이 많다는 이유 때문에 국가로부터 이런저런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된다. 열심히 노력하고 자유롭게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 승리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을 받는다는 게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다. 왠지 멋진 말 같다. 게다가 이건 서점마다 쌓여있는 자기계발서를 보면 늘 강조하는 말들이 아닌가.

경쟁의 본질

사실 신자유주의는 사람들 스스로가 신자유주의 옹호자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아도 아주 오랫동안 조금씩 우리 곁에 와서 익숙한 친구가 됐다. 그래서 학교든 직장이든 무한경쟁을 통해 승자를 가리는 일이 아주 흔한 일상이다. 자유경쟁을 통한 승부가림은 아주 정당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우선, 경쟁을 통해 건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모순이다. 경쟁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개성과 능력, 정체성, 가치관을 무시하고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게임이다.

소중한 우리 삶은 올림픽 경기가 아니다. 삶은 축구팀의 주전 경쟁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바로 이런 점을 건너뛰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경제 제도는 이마트에서 피자를 파는 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 사 먹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한다. 값싸고 양 많은, 게다가 공인된 호텔 베이커리에서 만든 피자다. 이런 피자가 하루에 600판씩 팔릴 정도로 경쟁에서 이기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믿는다. 이마트 피자 때문에 동네 피자가게 매출이 떨어진다면 투덜거리지 말고 이마트 피자를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기르라고 한다.


▲ 이마트 피자는 싸고 양이 많아서 인기다. 하루에 600판만 굽는 한정품이 금방 동이 난다.(사진은 KBS 방송 장면) © 윤성근

그래, 어떤 동네 피자집이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 끝에 이마트 피자를 능가하는 피자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다고 하자. 그러면 거기서 끝인가? 굳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이마트는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아주 약간만 노력하면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해서 탄생한 그 피자를 다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한 경쟁력을 키우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대는 지상 9층짜리 빌딩을 갖고 있는 이마트다. 오래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없는 돈 그러모아 만든 몇천만 원짜리 동네 피자 체인점은 처음부터 경쟁이 될 수 없다.

하물며 서로 치고받는 격투기 경기에도 규칙이 있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에는 규칙이란 게 없다. 인정사정이란 게 없다. 거대 자본을 갖고 있는 회사는 동네 구멍가게 옆에 커다란 슈퍼마켓을 만든다. 당연히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대기업이 만든 슈퍼마켓은 동네 구멍가게보다 좋은 물건을 싸게 파니까. 바야흐로 돈만 많으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돈에 목숨 건다. 그러다 정말로 돈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경쟁 없는 어울림 세상을 위하여

앞으로 이런 무한경쟁은 더욱 심하게 될 게 눈앞에 불 보듯 빤하다. 지금 아이들은 옹알이를 할 때부터 외국어를 배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제일 먼저 몸으로 배우는 게 남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험 성적을 가지고 경쟁하고 독서를 해서 얻는 점수로 경쟁하고 심지어 봉사활동 점수도 경쟁이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교 갈 때가 되면 경쟁은 더욱 처절해진다. 대학생이 되면 경쟁이 끝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사회에 나가면 더욱 죽기살기로 경쟁해야 먹고살 수 있다.

당연히 경쟁에서 이긴 몇 사람은 굉장한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경쟁에서 지거나 도중에 탈락한 사람들은? 사실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힘 대부분은 경쟁에서 여전히 이기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나'와 '너', 이 둘을 합친 '우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삶 속에 가장 기본이 되는 가정과 학교에서 먼저 경쟁의 끈을 없애는 일을 해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경쟁 가르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경쟁하는 교육을 받지 않아도 그 아이들이 커서 만든 사회는 경쟁력이 높다는 건 이제 알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토록 배우려고 하는 유럽식, 핀란드식 교육이 바로 좋은 예가 아닌가.

모두 함께 경쟁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행동에 옮겨야 한다. 무엇보다 돈이 우리 삶을 거머쥐고 흔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아이나 어른들이 경쟁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이 돈이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가 돈으로부터, '경제'라고 부르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도망쳐 나와야 한다.

무한경쟁에는 승자가 있을 수 없다. 언제나 패한 사람만 있다. 오래전에 나온 그림책 <꽃들에게 희망을>에 등장하는 애벌레 탑처럼 무엇을 위해 경쟁하든 그 끝에는 단지 아무것도 없는 허망함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그동안 신과 같이 숭배하던 돈이라는 녀석의 본질이 바로 그것과 같다.

다행히 은평구에는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모여 생각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달마다 한 번씩 있는 '녹색평론 읽기모임'에 참석해보는 것도 좋다. 세 번째 주 토요일마다 응암역 소공원에서 열리는 벼룩시장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작품이다. 이외에도 자기가 쓸 것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D.I.Y 모임 등 건전한 경제활동을 위한 노력은 각종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선 이렇게 작은 모임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개념들을 경험해볼 수 있다.

서로가 싸우고, 옭아매고, 부딪히는 경쟁으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좋은 사회 만들기는 경쟁이 아니라 어울림으로부터 시작된다.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무엇을 남보다 먼저 차지하려고 바쁘게 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참 좋은 어울림 세상이다. 

 

** 은평시민신문 : http://www.epnews.net/sub_read.html?uid=9307 

출처
원문링크 : 이마트 피자, 그냥 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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